18일 기자는 고양에서 열리고 있는 NH농협챌린저 취재를 마치고 철수를 하던 중 경기장 입구에 있는 야외 농구장에서 혼자 가볍게 런닝을 하며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를 발견하였다.
 
누군가 살펴보니 이번 대회에서 2번시드를 받고 이날 김지영(강원도청)을 2-6 6-1 6-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한 대만의 수웬신이었다. 그녀를 보자 지난 인천챌린저 때 선배 기자가 "수웬신은 주니어 때 잘 했던 선수였는데 지금은 챌린저급 선수가 됐다"라는 말이 기억났다.

 

스테피 그라프를 좋아하는 수웬신의 현재 WTA랭킹은 258위이다. 주니어 때는 2003년 38위까지 올랐고 2004년 단복식을 합산한 랭킹에서는 11위까지 기록했던 유망주였다.

 

기사 작성 때문에 그냥 갈까 했지만 챌린저에서 뛰는 이유와 코치도 없이 혼자 훈련하는 사연이 궁금해 그녀에게 다가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러자 수웬신은 유창한 영어로 곧 훈련이 끝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기자는 그녀가 훈련하는 모습을 찍으며 기다렸고 10분 정도가 지난 후 훈련이 끝났다며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Q. 먼저 승리를 축하한다. 경기내용은 어떠했는가?
A. 한국에 오기 전 일본 잔디코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번 대회는 하드코트 대회여서 경기초반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할 수록 코트에 적응이 돼 승리 할 수 있었다
 
Q. 경기 도중 심판의 판정에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는데?
A. 처음에는 심판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할 수 있고 이것 역시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를 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판정을 몇 번 했다. 그래서 어필을 했던 것이다
 
Q. 1년 중 몇 번 한국에 오고 친한 한국선수가 있는지?
A. 대만에서는 테니스 대회가 거의 열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모두 참가 하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의 얼굴은 대부분 알지만 이름은 잘 모른다. 
 
Q. 한국 선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한국 선수들은 정말 대단하다. 경기운영 능력과 체력이 좋고 특히 포기할 줄 모르는 정신력이 뛰어나다.

 

Q. 이번 대회에 코치 없이 혼자 왔는가?
A. 그렇다. 원래는 코치하고 같이 대회에 다니는데 코치가 사업 때문에 같이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이 그러한 경우다(수웬신의 코치는 개인사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Q. 대만에 루옌순과 찬융잔이라는 유명 선수가 있다. 대만에서 테니스가 어느정도 인기가 있는가?
A. 대만에서 테니스는 제일 인기가 없는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최근 루옌순 덕분에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다.

 

Q. 그렇다면 왜 테니스를 시작했는가?
A. 아버지가 테니스를 매우 좋아하셔서 아버지의 권유로 10세 때 시작하였다. 지금은 테니스가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마냥 좋다.

 

Q. 대만의 테니스 시스템은 어떠한가?
A. 대만 학교에는 테니스부가 없다. 테니스를 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개인 코치를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시니어가 된다 하더라도 루옌순이나 찬융잔과 같이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기가 어렵다.

 

수웬신은 답변을 한 후 한국은 어떻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는 초중고와 대학교에 테니스부가 있고 지방자치단체 및 몇몇 기업에서 테니스부를 운영하고 있다고 답하자 수웬신은 '정말이냐'며 부러운 듯이 물었다.

 

문득 기자의 눈길이 수웬신의 유니폼으로 향했는데 그녀의 유니폼 왼쪽에는 'OEC'라는 기업문구가 적혀있었다.

 

Q. OEC무슨 회사인가? 지금 OEC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는가?
A. OEC는 대만 해운회사인데 작년까지 나에게 투어경비 일체를 지원했었다. 하지만 올해 회사의 경영 악화로 지원이 끊겼다.

 

Q. 그럼 왜 로고를 계속 달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A. OEC는 나에게 무척 잘 해 줬던 회사이고 지금은 회사가 힘들지만 사정이 좋아지면 다시 나를 후원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Q. 투어경비는 어떻게 마련하는가?
A. 현재 부모님이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부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대회에 나가려면 이번 대회에서 꼭 우승을 해야 한다 
 
Q, 주니어 때 잘 나가는 선수였는데 지금은 왜 주로 챌린저에서 뛰고 있는가?
A. (한참 망설이더니) 테니스는 각 연령에 맞는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을 배우려면 성장하면서 연령대별로 코치를 따로 둬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대만의 선수들은 주니어 때 잘하지만 시니어가 되면 그렇지 않다
 
이때 기자가 한국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수웬신은 전웅선과 김선용을 아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그들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자신이 주니어 때 대회를 다니면서 많이 봤다고 했다. 수웬신이 그들의 근황을 묻자 김선용은 군대에 입대해 테니스를 하고 있고 전웅선은 실업무대에서 뛰고 있다고 대답하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수웬신은 강한 어조로 "테니스를 잘 하려면 스페인과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아시아는 이런 부분이 부족한 거 같다"며 "하지만 리나가 올해 호주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아시아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수웬신은 호텔로 가는 버스를 놓쳤다며 안절부절했다. 기자가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자 고맙다고 말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수웬신은 한국이 참 좋다고 했다. 특히 비빔밥과 소녀시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을 사랑하는 수웬신은 이번 대회가 끝나면 이어서 열리는 창원챌린저와 김천챌린저에 참가한다고 한다. 그것도 혼자 무거운 라켓가방을 혼자 짊어지고... 어떻게 이동할거냐고 묻자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한다.

 

다음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번 대회에서 꼭 우승을 해야 하는 수웬신. 모든 선수가 그렇듯이 선수의 목표는 대회 우승이다. 하지만 이 우승은 멀리 타지에서 온 이 수웬신에게 더 간절해 보였다. 

 

이 기사를 작성하던 중 이진아(양천구청)가 프랑스오픈 예선 1회전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이를 절대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진아도 수웬신처럼 먼 타지에서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으니까...

 

 

고양= 박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