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5월 29일 기사

 

[최정식의 인물탐험] 주원홍 전 삼성증권 테니스팀 감독 

지난 25일 2011 코리아오픈 국제휠체어테니스대회가 열리고 있는 인천 가좌시립테니스코트에서 주원홍 전 삼성증권 감독(55)을 만났다.

 

여자 테니스의 박성희와 조윤정. 남자 테니스의 윤용일과 이형택을 키워내며 한국 테니스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열었던 그는 지금 장애인 테니스를 이끌고 있다.

 

대한장애인테니스협회 부회장으로 있다가 회장이었던 정병국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테니스 영웅’ 이형택의 스승인 그가 엘리트 스포츠에서 장애인 스포츠로 활동무대를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휠체어테니스와 인연은 꽤 오래 됐다.

 

삼성증권 감독이었던 1994년 창단한 연세대 휠체어 테니스팀의 지도를 맡았고 이후 장애인테니스협회가 생기면서 동생인 주원석 미디어윌 회장과 정 장관 등 지인들을 회장으로 영입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그는 장애인테니스를 위해 일하면서 자신이 지도한 이형택이 2000년 US오픈에서 16강에 올랐을 때만큼이나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장애인들이 고마워하는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꼭 20년 전인 1991년이었다. 그 때 그는 여고생이었던 박성희를 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시키면서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었다.

 

박성희는 테니스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유망주였지만 당시만 해도 기자의 눈에는 시즌 내내 투어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를 만든다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보였다.

 

“1983년 미국 유학을 갔어요. 1년 동안 테니스 아카데미 몇 군데를 다니면서 지도자 과정을 밟았는데 그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테니스에 대해 눈을 뜬 거죠. 그 때는 국내에서 잘하면 최고라는 분위기였는데 세계무대에서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귀국한 뒤 제일생명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 스카우트를 하러갔다가 박성희를 만났어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포핸드를 아주 강하게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실업선수와 연습경기를 시켜봤는데 이기는 거예요. 아. 얘는 특별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박성희의 아버지를 설득해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제시한 실업팀 입단을 포기하고 국제무대에 나서도록 했다. 제일생명 테니스팀이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된 그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며 박성희를 ‘프로 선수’로 만들어갔다.

 

좀 더 뒷바라지를 잘하기 위해 대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테니스팀이 없었던 삼성에 후원을 요청했다. 2년 동안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득한 끝에 삼성물산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갖게 됐다. 그런데 박성희는 오랫 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4주 연속 예선 1회전에서 떨어지니 좀 실망했죠. 그래도 그 때는 외국대회에 나가는 것만도 고마웠으니까. 2년이 지나니까 성적을 내더군요. 그런데 회사에서 한번도 눈치를 안 줬어요. 그 때 함께 일하던 분들에게 지금도 만날 때마다 고맙다고 해요.”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회사에 대학생이었던 윤용일과 이형택으로 남자팀도 만들자고 졸랐다. 이형택만 스카우트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용일이 체격도 작은 데다 슬럼프에 빠져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했다.

 

마침 박성희가 세계 6위인 일본의 다테 기미코를 꺾어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윤용일은 삼성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용일이를 중학교 때 처음 보고 그 뛰어난 재능에 반했어요. 그 뒤 혼자서 무척 좋아했죠. 방송 해설을 할 때도 용일이 경기는 편파적으로 할 만큼. 사실 회사에는 여러 이유를 댔지만 선수에 대한 애정 때문에 스카우트를 고집한 거예요.”

 

그런데 윤용일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나중에 예상치 못한 큰 결과를 가져왔다. 윤용일은 삼성 입단이 결정되자마자 일본 서키트에서 종합우승했고.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윤용일은 이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단식과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올랐다. 윤용일은 물론 이형택도 병역혜택을 받게 됐고.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걸림돌이 없어졌다. 이형택이 메이저대회에서 두차례나 16강에 오르고 기적같은 투어대회 우승을 이룰 수 있었던 밑거름이 이 때 뿌려진 것이다.

 

IMF 사태의 여파로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팀도 살아날 수 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용일이를 뽑으려 한 건 합리적인 분석같은 게 아니라 순전히 애정에서 비롯된 판단이었지만 지금까지 제가 한 것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수에 대한 애정은 지도자로서 그의 신념이다. “기술적으로 누구보다 잘 가르친다고는 말 못해요. 그렇지만 누구보다 선수들을 좋아한 것만은 자부할 수 있어요.”

그는 이형택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는 선수를 키워내기 위해 전웅선과 김선용 등에게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유는 있었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책임을 느껴요. 그 애들을 포함해 좋은 재목들이 있었는데 결국 성장하지 못했던 게 한국 테니스가 침체에 빠진 한 원인이니까. 전보다 열성이 식었던 것 같아요. 저보다 젊은 지도자들이 열심히 가르치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게 좀 일찍 일선에서 물러난 이유입니다.”

그는 지난해부터 꿈나무 육성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할 주니어를 발굴. 육성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큰 의욕을 갖고 있다.

 

“너무나 잘 아는 분야잖아요. 유망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해요. 일과성 대회 출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좋은 아카데미와 연계한다든지 하는. 대상도 지난해 12세. 올해는 14세. 내년에는 16세까지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에요. 요즘 주니어 선수들 경기하는 걸 보고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져 있더라구요.”

 

가끔은 지도자 복귀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농담이겠지만 ‘주 감독이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그런가? 내가 하면 나아질까?’ 하는 생각도 하죠. 그렇지만 답은 ‘아니다. 서포터만 하자’입니다.” 그는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동생이 돈을 지원해 줘요. 내가 먼저 투자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손을 벌릴 수 있어요. 미국에서 돈을 보내주는 분도 있어요. 정말 뛰어난 아이는 삼성에 연결시켜줄 생각입니다.” 그는 2008년 삼성증권 감독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16년간 잡았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선수 지도의 역할을 후배와 제자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삼성과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관계와 영향력을 테니스를 위해 쓰려고 한다.

‘동생의 지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주원석 회장이 가끔은 불평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 회장은 생활정보지 벼룩시장을 통해 번 돈을 테니스에 아낌없이 쓰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초창기 한 해 수억원씩 적자를 내던 월간지 ‘테니스 코리아’를 내고. 챌린저대회를 만들고. 장애인과 동호인 대회에 스폰서로 참여한다.

 

이번 코리아오픈도 주 회장의 미디어윌 계열사인 ‘알바천국’이 후원하고 있다. “항상 고맙죠. 먹고 사는 일이라면 잘 사는 형제에게 도움받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형의 취미생활이잖아요. 그래서 가끔은 억지로 할 건 없다고 말해요. 그래놓고 실제로는 대충 넘어가는 거죠.”

 

스포츠서울 최정식 체육1부 선임기자 bukra@sportsseoul.com